제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사라봉에 가는 도중 바로 옆에 자리한 국립제주박물관에 들렀습니다. 제주에서 살고자 마음먹었는데 그래도 국립박물관은 한 번쯤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마침 좋은 시간대였기 때문이었죠. 코로나로 많지 않은 관람객들과 섞여 상설전시를 관람한 후에 밖으로 나가 특별 전시관에 들어섰습니다. 그때 본 것이 ‘탐라순력도’였습니다. 그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너무나 정교한 그림체와 당시 시대상을 표현한 자료로서도 흠잡을 데 없는 섬세함에 매료되었고, 전시관에서는 그림을 확대하여 영상으로 제작하여 거대 화면으로 상영 중이었는데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재밌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림 속의 말, 소, 사람들이 너무나도 귀엽게 그려져 있었거든요. (특히 말이 정말 귀엽습니다) 전시관을 나오며 도록을 정말 사고 싶어서 들었다 놨다 하였지만 너무나 두꺼웠고 가격도 4만 원이 넘었기에 내려놓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 이후로 몇 개월 뒤, 최열 작가님의 ‘옛 그림으로 본 제주’라는 책을 보게 되었고 이거다 싶어 단번에 샀습니다. 그토록 인상 깊었던 탐라순력도가 실려있는 데다 그림에 대한 설명은 물론이고 관련된 이야기와 다른 옛 그림들까지 빼곡히 실려있으니 금상첨화였습니다. 얼마나 정성껏 책을 지으셨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작가님의 서문에도 탐라순력도를 본 후 가슴이 벅차오르고 강렬한 무언가가 느껴졌다고 하셨는데 소박하고 평범한 제가 그 마음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누가 보더라도 매력적인 그림임은 분명한가 봅니다.
회원분들은 이미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7월 30일에 최열 작가님의 북 토크가 열립니다. 저도 시간이 된다면 꼭 참가할 예정입니다. 제주를 좋아하는 많은 분이 이 책을 보고 읽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책은 두껍고 내용이 쉽지만은 않지만 생각날 때마다 천천히 읽어도 되고 때로는 그림만 보아도 충분히 즐거울 것입니다.
덧붙여, 우연히 길에서 만난 전시 소식.
7월 한 달간 맛있는 아이스크림과 밀크쉐이크를 만들어 주고 있는 ‘어니스트 밀크’의 d news 공간에는 문창배 작가님의 작품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개인전이 중앙로에 있는 예술공간 이아에서 열리고 있는 것을 산책길에 발견하였습니다. 또한 오영종 작가님의 개인전도 함께 관람할 수 있으며 예약은 필요하지만 모두 무료입니다.
이아의 맞은편에는 (d room의 유즈드북스 코너에도 도움을 주셨던) 동림당이라는 헌책방이 있는데 7월 17일까지 2층 전시장에서 제주의 옛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렀다가 정말 귀중한 자료들에 대한 열성적인 설명을 듣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이처럼 제주시에만 있어도 곳곳에 나름 재미있는 풍경들이 숨어있지요. 탑동에서 출발하여 바닷가를 잠시 거닐고 무근성을 거쳐 원도심을 한 바퀴 둘러보며 느긋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저에게도 즐거운 산책코스입니다.
— d room STAFF 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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